Life transformation and adaptability (변화와 적응)

조아윤
8 min readFeb 5, 2019

“우주에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라는 한 철학자의 말이 있다. 변화를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변화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도전, 희망, 섭리와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연상하게 된다.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는 점은 얼마나 안도감을 주는지. 나 자신이나 누군가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얼마나 기쁜지. 긴 시간이 걸리지만 그만큼 아름답고 축하할만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변화와 적응에 대해서 써보고 싶었다.

내가 살면서 겪었던 큰 변화들을 생각해보면, 변화의 종류는 두 축을 기준으로 네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급격한가/서서히 찾아오는가’와, ‘내부로부터의 변화/외부로부터의 변화' 로 말이다.

1. 외부로부터의 급격한 변화

급격한 외부로부터의 변화는 개인의 선택을 요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지켜나갈 수 있는 꿋꿋한 마음이 필요하다.

내가 살면서 겪었던 외부로부터의 예상치 못한 급격한 변화는 아마도 아버지의 사업 실패일 것이다. 이삿날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하교 후 달라진 집의 모습에 왈칵, 현실이 밀려왔다. 큰길가의 찻소리가 낯설도록 크게 들리는 집 화장실에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고 눈물을 쏟았다. 눈물을 흘리면서 결심했다. 이 눈물을 마지막으로 울지 말아야지, 하고. 그렇게 마음을 먹자 거짓말처럼 슬프지 않게 되었다.

그건 아마 엄마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바뀐 지위와 형편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아빠와 달리, 엄마는 동트는 소리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단단하고 담대하게 변한 환경에 적응해갔다. 여느때처럼 하루에 두번 집을 광이 나게 청소하고, 예전과 달리 긴 시간을 일했다.

엄마는 가슴 아파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았다. 학과장이자 전공과목 교수님에게 직접 학자금 신청 사인을 받는 것을 주저했던 나에게 담담하게 “그게 네가 할 몫이다"라고 하셨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모질기보다는 어쩐지 우아하게 느껴졌다.

그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하지만 바꿀 수 없는 변화에 대해서 묵묵하게 돌파해가는 엄마의 모습 덕분에 10년동안 우리 가족 모두 씀씀이가 줄어들고, 잡초처럼 강인해졌고, 나와 동생도 부모님의 도움보다는 스스로 헤쳐나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의 내가 ‘변화’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변화가 노력의 산물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노력일 때가 있다. 우리는 빠르게 변하는 것을 보고 찬탄하기도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 오래된 전통을 간직한 도시나 맛이 변하지 않는 식당, 세월에 깎이지 않는 단단한 건축물 등…

남편과 나는 각각 시기는 다르지만 어려웠던 가정경제가 급격하게 전환이 된 시점을 기억하고 있고, 둘다 공교롭게도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는 둘다 그 당시 어렴풋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 믿음대로 선한 기도를 하였고 그 기도가 들어졌다고 믿을 뿐이다.

그렇기에 궁핍만이 연단이 아니라 부요도 연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변화를 설계하신 그 분의 뜻을 생각하며 나 또한 그 분이 원하시는 방향대로 변하는 것을 소망하고, 헛된 변화를 경계하는 마음이다.

2. 외부로부터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

외부로부터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에는 ‘인지'와 ‘전략'이 필요하다. 마치 자연에서 일어나는 진화와 자연도태와 비슷하다. 외부로부터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의 무서운 점은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면 어느순간 도태된다는 점이다.

내가 겪은 외부로부터 서서히 일어난 변화는 주로 커리어에 관련된 것이었다. 회사와 업계는 많은 요인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변화가 서서히 찾아오지만 그 상호연관성때문에 한번 경향이 생겨나면 다시 돌아가기가 무척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변화의 조짐이 보이면 그 변화가 끝까지 간다.

중학교때부터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서 광고홍보학과를 가고 졸업을 하려는데, 당시 유행하던 책의 제목이 ‘광고가 지고 000가 뜬다' 부류의 것들이었다. 물론 대개 000이 진다, 라고 사람들이 표현할 때 000은 없어지지 않는다. 시대의 전유물같던, 아이코닉했던 했던 분야가 점차 다변화되고 다양해지면서 독점하던 것을 나눠가지고 서로서로 흡수할 뿐이다.

시대가 변하더라도, 기존의 것을 뚝심있게 지키며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전략을 취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나의 경우에는 변화하는 흐름에 맞춰 미래를 예상하고 나 자신을 적응시키는 편을 택해왔다.

그렇게 디지털 마케팅으로 첫 커리어를 시작하고, 그렇게 영국에 가고, 그렇게 또 다시 커리어를 바꿔 UX디자인을 하고 있다.

요새는 솔직히 이게 맞는가?라는 생각도 한다. 변화를 내다보는 것에만 급급하여 나 자신이 충분히 준비되기도 전에 뛰어들어서, 항상 어려운 길을 가고, 더 안좋게는 초보자로 남는 것은 아닌가 라는 걱정도 있다.

단기간 노력하기보다는 오랜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변화와 유지의 밸런스를 찾는 것을 연습해야겠다.

3. 내부로부터의 급격한 변화

내부로부터의 급격한 변화라고 하면 연애, 다이어트, 시험공부 같은 것이 떠오르는데.. 사실 내부로부터의 급격한 변화는 언제든지 내부적 작용에 의해서 다시 반대로 돌릴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단기로 끝나는 것 같다.

내부로부터 급격한 변화가 왔음에도 그 변화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는 대부분 4번. ‘내부로부터 서서히 찾아오는 변화’가 주 작용을 한 경우이다.

4. 내부로부터 서서히 찾아오는 변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4번이다. 결국 1,2,3번 모두가 4번을 요한다. 내부로부터 서서히 찾아오는 변화가 따르지 않으면 변화는 중도포기된다. 예를 들어 1번, 외부로부터의 급격한 변화 — 부모님 사업의 실패로 달라진 가정형편에 진심으로 당당해지기 까지는, ‘어떠어떠해야한다’ 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현재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법을 서서히 배워야 했다. 2번, 외부로부터 서서히 찾아오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결국은 내부로부터 꾸준히 변화해야한다.

내부로부터 서서히 찾아오는 변화의 재미있는 점은, 연관이 없어보이는 순간의 깨달음이나 사건이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긴 시간 서서히, 꾸준히 변화했다면 분명 강렬한 계기가 있을 것이다.

우리 아빠의 경우 50년간 피우던 담배를 10년째 끊고 계시다. 그 어떤 설득과 만류를 해도 끊지 않으시더니, 담배를 끊은 이유가 어느날 문득, 모임 중에 스윽, 나가 흡연 구역에 모여서 담배를 피는 모습이 ‘초라해보여서'라고 하셨다.

25년동안 몸치로 살아온, 체육시간이면 깍두기이고만 싶었던 내가 지금은 운동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약 10년간 필라테스 — 수영 — 서핑 — 크로스핏으로 이어지며 운동의 매력을 알게 되어 이제는 운동 없이 못살게 된 계기는 흡사 ‘이종'으로 느껴졌던 남편을 만나면서이다.

처음 나와본 외국, 호주 땅에서 호주의 햇볕을 그대로 받아 까맣게 그을린 그 당시 남편을 둘러싼 공기는 너무나 새로웠다. 본적 없이 넓고 파아란 쪽빛 바다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호주인들의 언어, 말투, 문화, 복식, 생김새,… 모든 것이 새롭고 강렬하여 심지어 아직까지 기숙사 옆방 친구 (인사만 하는 친하지 않은) 의 향수냄새까지 기억할 정도이다.

그처럼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나는 한국에 돌아왔고, 물리적으로는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한국에서 내가 그것들을 기억하고 내 안에 저장하는 방식은 생전 하지 않던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 강렬하고 이색적인 경험에 대한 반추, 언젠가는 다시 만나고 싶다는 끌림으로 운동과 영어를 꾸준히 가까이하게 되었다.

아빠와 내 경우 모두, 어떤 예상치 못한 계기로 내 안의 스위치가 딸깍, 눌렸다.

내부로부터 서서히 찾아오는 변화의 아름다움은 스위치가 켜진 이후 긴 시간의 노력이 따라온다는 점이다.

그 노력의 결과가 지금이기에, 항상 부족한 나름대로 뿌듯함을 느낀다. 이 때 느끼는 뿌듯함은 좋은 점괘가 맞아들어가 횡재를 했을 때의 기쁨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든든하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알기에 희망적이다.

또 다른 내부로부터 서서히 찾아온 변화는 주로 가정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결코 포기하지 않을 한가지가 있다면 아마 가족, 가정일 것이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은 원가족과의 화해였다. 그동안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멋지게 헤쳐나간 부분도 있었지만 서로 상처를 남긴 부분도 많았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것을 반드시 풀고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변화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변화란 거대한 한 순간보다는, 순간 순간에 어떠한 태도로 임하는가에 달려있는 것 같다.

가족 관계의 변화도 그랬다. 갑자기 부모님을, 내 자신을 바꾸려하기보다는 순간 순간 내 태도에 좀 더 사려를 더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할 때 변화가 일어났던 것 같다.

연관성 없어보이는 것이 변화의 계기가 되어 담배를 끊고 운동을 시작하듯 내가 진심을 다한 작은 순간들이 전혀 예상치 못하게 서로의 변화의 계기가 된다는 점은 놀랍다.

이처럼 모든것이 조화롭게, 오묘하게 협력하여 선을 이뤄내고 변화가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볼 때 나는 경외와 감사를 느끼곤 한다.

변화란 결코 편안하지 않고 때론 고통스럽지만, 변화를 믿을 때 오는 그 평안함은 무척이나 그윽하다. 그 그윽한 평안함이야말로 우리가 변화를 꾀하는 노력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아닐까.

--

--

조아윤

UX Design, Design Thinking and Team Dynamic. www.soul-farmers.con